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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낭만주의

목향의 서재 2008. 12. 8. 20:12

낭만주의는 우선적으로 고전주의에 대한 반대급부적 성향으로 이해된다. 고전주의가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들을 위한 그들만의 만찬이였다면 낭만주의는 단연 평민과 서민지향적 문학이었다. 고전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낭만주의는 "혼이 없는 메카니즘" 인 기계적, 죽은 문학으로서의 고전주의를 맹렬히 비판한다.

 

자연에 대한 인식에서 그 둘은 차이를 보이는데, 고전주의가 프랑스의 정원으로 대표 되듯이 가학적인 재제, 자연위에 옹립하고자 했다면 낭만주의는 감성으로서 자연과 대화하며 교제하는 것을 중요시 하였다. 루소가 남긴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발언이 낭만주의적 입장을 표명해 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자연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것이 바로 '상상력' 인데, 그것은 창조의 원동력이라 믿었다.

 

고전주의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지식과 이성을 따르고자 하였는데, 낭만주의는 주관적인 세계의 인식을 중점으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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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스탈부인이 있는데 그녀는 문학과 정치체계등은 사람이 만든 사회적인 성질을 가졌으므로 세상과 사회적 욕구가 변한다면 당연히 문학도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탈부인은 소설사회학의 시초를 열개한 사람으로 뗀느와 함께 소설사회학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을 주창한 사람이다. 그녀는 살롱에서 많은 대화와 토론을 주장하고 보는 사람마다 배울 것을 찾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나 독일문학에 관심을 보였는데 그녀의 후기는 독일과 이태리 지방을 여행하며 괴테 등을 만나 토론하며 저서를 집필할 정보를 모으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탄생한 '독일론'은 독일문화를 유럽에 최초로 선보였던 책이다. 검열할 거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회수해서 절판하게끔 만들었지만 셰익스피어 소설등 외국의 문학을 도입하며 그녀의 책은 인기를 끌게 되었다. 스탈부인은 후에 콩스탕과 연애를 하게 되는데 둘의 사랑이야기를 남성적 이기주의 입장에서 서술한 콩스탕의 '아돌프'라는 소설이 있다.

 

 

 샤토브리앙

 

 

샤토브리앙도 스탈부인과 함께 낭만주의를 제창하며 선도한 선구자적인 인물이다. 그의 책은 '르네'와 '아탈라'가 대표적이다. 샤토브리앙은 루소의 영향으로 종교를 부정하나 후에 기독교로 다시 복귀한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적 문화의 가치가 그것만이 진정한 종교이기 때문에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자체의 영감으로 부터 생선된 주제가 예술에 얼마나 적합한지가 주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종교를 작품의 기본이 아니라 문학에서 부속품으로 삼을 것을 요구했다.

 

낭만주의에 대표적인 선구자로 위고와 발자크를 꼽을 수 있다. 위고는 '노트르담 드 파리' '레미제라블' 등 후세에 호평을 받으며 대표적인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레미제라블 포스터

 

그 중 '레미제라블'은 모든 문체와 소재, 그리고 모든 양식이 혼합되어 하나의 세계를 이룬 작품으로서 낭만주의 정신에 투철한 낭만주의 사회소설의 걸작이라 불린다.

 

또, '크롬웰'은 희곡으로 문학의 시대를 '창세기의 서정시, 호머의 서사시, 기독교와 드라마의 시대등으로 나눈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희곡이란 비극적 요소와 희극적 요소, 숭고한 요소와 그로테스크적 요소가 함께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로테스크란 것은 기괴하고 기이한, 극도로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말하는데, 이 모든것의 응축이 걸작을 만든다고 보았다. 위고의 '크롬웰'은 성공을 이루지 못했지만 뮈세의 '로랑자조'는 위고의 주장을 입증할만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낭만주의에서 더 없이 중요한 것이 소설의 발달이다. 소설은 자유로운 주관적 표현을 주창하는 낭만주의에 가장 잘 부합하는 예술양식이 되었다. 사소설의 최초 걸작은 샤토브리앙의 '르네'로 불안과 우울에 넘쳐 있던 낭만적 주인공의 영혼이 묘사되어 있고, 콩스탕의 '아돌프'는 스탈부인과의 연애 이야기로 위에 이야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