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자료방

[스크랩] 1971년 대선당시 김대중의 연설문

목향의 서재 2015. 7. 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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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vs 전라도…

1971년 4월 27일 갈라졌다!
[김대중 평전 '새벽'·12] 거대한 축제

    

거대한 축제

1971년 4월 18일은 정치 인생에서 특별한 날이었다.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유세가 있었다.

일찍 일어나 마당을 거닐었다.

선거는 열흘 정도만 남겨두고 있었다.

유세장에서 열광하던 청중들이 떠올랐다.

김대중은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문득 마당 한켠을 보니 꽃들이 피어 있었다.

어느 새 봄이었다.

꽃들과 눈인사를 했다.

김대중의 동교동 집은 아침저녁으로 터질듯 붐볐다.

인기가 치솟자 찾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달라진 위상에 스스로 놀랄 때가 많았다.

권력은 태어날 때가 가장 무서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후보 박정희에 결정타를 날려야 했다.

이 땅에 진정한 봄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장충단 유세가 중요했다.

 

오후 2시쯤 신민당 당사를 나왔다.

안국동 네거리에서 무개차에 올랐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거대한 인파가 차를 에워쌌다.

군중 사이를 헤쳐 나가는 광경이 흡사 선박이 바다를 가르는 듯했다.

그 넓은 장충단 공원이 터질듯 했다.

연단에 올라서니 눈 가는 곳은 모두 사람이었다.

100만 인파였다.

그날 생애 최고의 연설을 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서울 시민 여러분!

오늘 여기 장충단 공원의 백만이 넘는,

대한민국에서뿐만이 아니라 세계에 유례가 없을 이 대관중이 모인 것을 보고,

서울 시민의 함성을 보고 이제야말로 정권 교체는,

우리의 승리는 결정이 났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 앞에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에 정권 교체를 하지 못하면 이 나라는 박정희 씨의 영구 집권의 총통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공화당은 지난 개헌 때 이미 박정희 씨를 남북 통일이 될 때까지 대통령을 시키려 했으나,

그 당시는 아직 자기 공화당 내부나 야당이나 국민이나 거기까지는 할 수 없어서 못했던 것입니다.

 

나는 공화당이 그런 계획을 했다는 사실과 이번에 박정희 씨가 승리하면 앞으로는 선거도 없는

영구 집권의 총통 시대가 온다는 데 대한 확고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대중은 박정희의 영구 집권 음모를 처음 폭로했다.

1967년 목포 선거에서 '3선 개헌'을 예고했을 때 박정희는 이를 강력 부인했지만 결국 개헌을 강행했다.

이번에도 김대중의 눈은 박정희의 속내를 정확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4·19는 학생의 혁명이었습니다.

5·16은 군대가 저질렀습니다.

이제 오는 4월 27일은 학생도 아니고, 군대도 아니고, 전 국민이 협력해서 이 나라 5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의 손에 의해서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위대한 민주주의 혁명을 이룩하자는 것을 여러분에게 호소하면서,

나와 뜻을 같이하는 여러분이 총궐기하는 의미에서 박수갈채를 보내주십시오.

 

여러분!

감사합니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기어이 승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선거에서 나와 더불어 승리할 것입니다.

7월 1일은 청와대에서 새로운 취임식을 올리는 날입니다.

550만 서울 시민 여러분! 7월 1일에 청와대에서 만납시다."

날입니다.

서울시민 여러분, 7월1일 청와대에서 만납시다.

 

김대중 장충단 연설 전문은 이 글 아래에 있습니다.


출처 http://www3.yonsei.ac.kr:8888/kdjlibrary/historyData/researchVOD/view.asp?pkid=2&page=1&bbsid=11&searchValue=&searchField=&reportCnt=&searchCampus=&searchLowItem=#
※ 본 글에는 함께 생각해보고싶은 내용을 참고삼아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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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대중은 "내가 정권을 잡으면"을 16번이나 외쳤다.

거대한 축제였다.

장충단 공원 일대는 환호의 도가니였다.

청중들의 함성은 남산을 허물듯했다.

모든 눈은 김대중 한 사람을 향했다.

김대중은 늠름했다.

비로소 야권에서는 승리를 점치기 시작했다.

 


  ⓒ프레시안(손문상)

 

유세가 끝나고 무개차에 오르자 다시 시민들이 에워쌌다. 동대문, 종로를 거쳐 광화문 쪽으로 향했다.

청중들은 이내 시위대로 변했다. "김대중" "정권 교체" "3선 반대"를 외쳤다. 흡사 4·19 혁명 전야를 방불케 했다.

이날 박정희는 대구 수성천변에서 유세를 했다. 장충단 공원 유세 상황을 보며 여권 수뇌부는 경악했다.

박정희는 선거 이틀을 앞두고 장충단공원 유세로 맞불을 놨다.

청중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러나 청중 숫자와 유세장 열기는 김대중의 유세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박정희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바로 눈물이었다.

 

"이번 출마가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울먹이며 표를 구걸했다. 도대체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독재자의 눈물, 그 속에는 독(毒)이 들어있었다. 선거가 끝난 후 일본 주요 언론들은 '박정희의 승인이 동정표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박정희의 눈물을 믿은 국민들은 후회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유세장의 약속처럼 박정희는

국민들에게 더 이상 표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선거 자체를 강탈해버렸다.

판세가 극도로 혼미했다. 불안해진 정부 여당은 김대중을 용공 분자로 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역 감정을 조장했다. 그대로 가다가는 전세를 뒤집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사실 '빨간색' 낙인은 김대중이 아닌 박정희에게 찍어야 했다.

 

만주군 출신의 박정희는 여순 사건에도 자유롭지 못했다.

또 둘째 형의 월북과 거물 간첩 남파 사건 등으로 행적 곳곳이 불온했다.

이는 미국 정부 기관과 국내 여러 자료 등에서 밝혀진 사실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김대중은 '가진 자'로 분류되어 인민군에게 총살을 당할 뻔했다.

그런데도 정작 붉은 물은 김대중에게 뒤집어씌웠다.

 

선거를 한 달쯤 남긴 3월 하순부터 간첩단 사건이 잇달았다.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가 경쟁하듯 발표했다.

투표 4일을 앞두고는 지하당 간첩단 13명을 검거했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외무장관 최규하가 직접 김대중을 겨냥했다.

 

"김대중 후보의 언론·체육인 등의 남북 교류, 4대국 안전 보장안 등 공약을 북한이 지지를 표명했다."

 

이승만 정권 때만 해도 선거판에 지역감정에 의한 편 가르기는 없었다.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와서 국회의원에 선출되었다.

그런데 박정희가 집권하면서 나라가 갈라졌다.

경상도 우대 정책이 서로에게 미움을 심었다.

그리고 선거 막판에 '호남 고립'이란 추악한 카드를 빼들었다.

국회의장 이효상은 이렇게 선동했다.

"신라 천 년 만에 나타난 박정희 후보를 다시 뽑아서 경상도 정권을 세우자.

쌀 속에 뉘가 섞이면 밥이 안 되는 법이다.

경상도 표에 전라도 지지표가 섞이면 조가 섞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상도 지역에 '전라도 사람들이여 단결하라'는 선전물이 뿌려졌다.

후보 김대중의 벽보 밑에 '호남 후보에 몰표를 주자'는 격문을 붙였다.

경상도 도민들의 지역 감정에 불을 질렀다.

중앙정보부의 공작이었다.

 

지역 감정은 언론에서 더 조장했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그 대립의 뿌리가 삼국 시대까지 올라간다는 분석 기사를 실었다.

적대감이 '숙명적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투였다.

 

투표의 날이 밝았다.

김대중은 아내와 동교동 제1투표소에서 투표를 했다.

내외신 보도진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김대중 부부의 표를 포함 모두 2700표가 무효로 처리되었다.

이유는 선거관리위원장의 도장이 찍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대통령 후보 김대중이 찍은 김대중의 표가 무효로 처리되었다.

부정 선거와 맞서 싸워야 했던 김대중에게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투표용지가 분실되고 중복·대리 투표가 적발되었다.

그러하니 그냥 묻혀 간 부정행위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개표는 29일 정오를 지나 완료되었다.

 

'박정희 634만 2828표, 김대중 539만 5900표.'

 

94만여 표 차였다.

하지만 김대중은 경상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승리했다.

경상도에서만 150여만 표(경북 94만, 경남 56만 표) 차이로 참패했다.

그것은 지역 감정 조장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이때부터 한국은 지역 감정의 수렁에 빠져버렸다.

패자인 김대중은 승자보다 더 '당당히' 성명을 발표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극히 담담한 심정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국민의 평화적 정권 교체에 대한 애절하고도 열화와 같은 열망이 불법 부정으로 짓밟히고

이제 다시는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는 바라볼 수 없는 시점에 3·15 부정선거를

무색케 할 불법 부정 선거의 결과를 묵인할 수 없다."

 

'지극히 담담하다'고 했지만 김대중은 너무 아쉬웠다.

유세장의 열기와 정권교체를 원했던 유권자들의 간절한 표정이 떠올랐다.

김대중은 잘 싸웠다.

후회 없이 싸웠다.

정치가로서 하늘이 준 도량과 자신이 갈고 닦은 식견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우리 현대사는 용기 있고 정직한 정치인 하나를 얻은 셈이었다.

 

그런데 만일 김대중이 1971년 선거에서 이겼다면 어찌 됐을까.

과연 정부 여당이, 아니 박정희가 승복했을까.

순순히 정권을 내놓았을까.

거의 완벽한 병영 국가를 구축한 박 정권이 민심에 순순히 투항했을지는 미지수다.

역사에 가정법은 있을 수 없지만 곧바로 영구 집권 수순에 돌입했던 박정희의 행적을 돌아 볼 때

김대중의 승리가 선거 혁명으로 이어졌을지는 불투명했다.

 

어쩌면 이런 논의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이미 박정희는 김대중의 승리를 훔쳐갔기 때문이다.

김대중에게 독재 국가에서 정권 교체가 가능한지 물었던 미국 상원외교위원장 풀브라이트의 의구심은 진행형이었던 셈이다.

 

이희호는 선거가 끝난 후 망명 중인 남편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바 있다.

요즘 생각하면 1971년에 당신이 당선 못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었나 봐요.

만일에 당선되셨다면 당신 생명도 주위에 몹쓸 사람들 때문에 위험이 따랐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중앙정보부는 김대중의 말처럼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결코 각하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다면 적게 잡아도 100만 표 정도는 이긴 선거였다.

그 같은 사실은 이후 여러 사람들이 증언했다.

 

누구는 그때 김대중이 정권을 잡았더라면 젊고 힘이 있었으니 나라를 멋지게 개조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가정에 불과하다. 김대중은 대통령 선거에서 지고도 온갖 박해를 받으며 새 시대를 열었고

우리 역사를 새롭게 썼기 때문이다. 그는 지면서도 늘 이겼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선거가 끝나고 <동아일보>엔 이런 칼럼이 실렸다.

 

여하간 김대중 후보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잘 싸웠다.

그는 정치가로서 하늘이 준 그 도량과 그 식견과 그 수완과 그 웅변과 그 정직한 자세를 마음껏 발휘했다.

그는 지금 혜성처럼 광망(光芒)을 우리 민족에게 비쳐주고 있으며,

혼탁에 빠진 이 나라 정계에 큰 청신제가 될 것을 부탁해 마지 않는다.

승패는 병가의 상사란 말이 있다.

그러므로 싸움이란 이기고 지는 수도 있고 지고도 이기는 수가 있다면,

이번 김대중 후보의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김 후보는 지금 전후의 착잡한 만감에 사로잡혀 있을지 모르나,

하늘은 오히려 그에게 더욱 큰 대임(大任)과 대망을 안겨주기 위해 이러한 시련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김대중은 역사와 민족이 안겨준 대임을 안고 살아갔다.

한 번도 현실을 회피하지 않았다. 현대사의 한 복판에 있었다.

김택근은 시인이며 언론인이다.

<경향신문> 종합편집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경향닷컴 사장 등을 지냈다.

<김대중 자서전>(삼인 펴냄)을 6년 동안 대표 집필했다.

예리함과 따스함이 동시에 스며있는 산문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의 팬을 자처했다.

 

펴낸 책으로는 산문집 <뿔난 그리움>(꿈엔들 펴냄), 동화집 <벌거벗은 수박도둑>(사계절 펴냄).

도법 스님 순례기 <사람의 길>(들녘 펴냄)이 있다.

김택근 언론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1010002559&section=04

 

 

 


71년 장충단공원 연설문

(1971. 4. 18)

 

‘독재·특권경제 끝내겠습니다”

연설을 시작하기 전 나의 경쟁상대인 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건강과 건투를 빕니다.

나는 전국의 유세결과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제야말로 우리의 승리로 결정났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번에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박정희씨 영구집권의 총통시대가 오게 됩니다.

나는 공화당이 그런 계획을 했다는 사실과,

이번에 박정희씨가 승리하면 앞으로는 선거도 없는 영구집권의 총통시대가 온다는 확고한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야당이 이번에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더 이상 싸워나갈 힘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박정희씨는 며칠 전 대전에서 연설하면서 ‘나의 상대는 북괴뿐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김일성은 박정희 후보만의 상대가 아니라 3천만 국민의 대결상대요, 여러분과 나의 대결상대인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공산당을 키워주고 공산당을 승자로 만든 박정권의 독재와 썩은 정치와 특권경제를 우리가 다같이 종식시키지 않으면

이 나라는 장차 공산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공산당을 이기기 위해서도 박정권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이 나라의 독재체제를 단호히 일소할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금부터 4년 전 목포에 나를 잡으러 왔었습니다.

유명한 6·8 목포선거 당시 내가 박대통령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 국회의원 부정선거한 것을 보니까 삼선 개헌할 목적 아니냐” 이랬더니

박대통령이 목포 역전에 2 만여명을 모아놓고 연설을 했습니다.

“삼선개헌은 절대로 안한다.

내가 삼선개헌을 한다는 것은 야당놈들의 모략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2년이 못 가서 재작년에 절대로 안 한다는 삼선개헌을 해버렸습니다.


‘대통령은 두 번밖에 할 수 없다’는 헌법 제69조 3항은 누구도 고칠 수 없다고 헌법부칙에 못박아 앞으로

이 나라에서는 누구든 자기 한 사람의 영구집권을 위해 헌법을 고치는 일은 영원히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나는 정권을 잡으면 정보정치를 일소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는 말만 민주주의입니다.

백성 민(民), 임금 주(主) 백성이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백성에게 선거의 자유가 없습니다.

야당유세장엔 나오지도 못하고 가더라도 박수를 치지 못합니다.


중앙정보부는 언론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그래서 신문과 방송이 사실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부정선거를 지휘하고 야당을 탄압하고 분열시키고 심지어 여당조차도 박정희 1인 독재에 반대한 사람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재작년 삼선개헌 때 반대한 공화당 국회의원들은 지하로 끌려가서 몽둥이로 맞고 온갖 고문을 당했습니다.

삼선개헌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공화당 의장직을 그만두고 탈당한 김종필이라는 사람이

오늘날 자기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정보정치의 압력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공산당을 이깁니다”


중앙정보부는 학생들을 괴롭히고 학자와 문화인들을 탄압하고 있으며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경제에 개입해서 모든 이권에 간섭합니다.

요즘도 경제인들을 수백명 불러다가 “김대중에게는 돈을 주지 말아라.

만일 돈을 주었다가는 너희 사업을 아주 망쳐놓겠다”고 협박해서 절대로 안 준다는 각서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각서를 썼다는 말도 밖에 나가서 안 하겠다는 각서를 또 한 장 받고 있습니다.


중앙정보부는 독재의 본산입니다.

이 같은 정보정치를 그대로 놔두면 이 나라의 암흑과 독재는 영원할 뿐 아니라 국민 여러분의 권리와 자유가

소생될 길이 없습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중앙정보부를 단호히 폐지해서 국민의 자유를

소생시킬 것을 여러분 앞에 약속드립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지방자치를 실시해서 민주주의 기초를 확립하겠습니다.

대통령 직속 하에 여성지위향상위원회를 두어서 우리 1천5백만 여성들의 교육과 생활과 사회적 대우에 대해 특별배려를 하고,

우리 여성들의 능력을 개발해서 지금까지 파묻혔던 여성들의 실력을 국가건설에 활용해 새로운

민족중흥의 힘을 발휘하게 할 것입니다. 여성문제에 대한 특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산당을 잡으려는 중앙정보부나 전국의 정보경찰들이 지금 공산당을 잡고있습니까.

내가 전국을 다녀보니까 그 사람들이 밤잠 안자고 잡으러 다니는 것은 공산당 간첩이 아니라 신민당 대통령후보 김대중을

잡으러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공산당도 잡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국군을 정치적으로 악용해 사기를 떨어뜨리고 전력을 저하시키고 있습니다.

군대내 사고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고립돼버렸습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1년 이내 서울 5백50만 시민들이 안심하고 발 뻗고 잘 수 있는 국방태세를 완수할 것입니다.

첫째로 완전히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부가 서기 때문에 공산당이 발붙일 데가 없습니다.

모든 정보기관이 공산당 잡는 데 집중하니까 간첩이 얼씬도 못합니다.

국군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중립시키니까 오직 대공전투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국제적으로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살아나서 신임과 존경을 받게 되니까 우리

우방국가들이 더욱 도와주고 여기에 미군의 철수가 준비됩니다.


이번에 정권교체가 돼야만 민주주의가 승리하게 되고, 우리의 안보태세는 반석 위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가지 책임지고 말하겠습니다. 김일성은 앞으로 10년내에는 대한민국을 침범하지 못합니다.

38선을 돌파하지 못합니다. 김일성은 지금 그럴 힘이 없습니다.

다만 문제는 우리 정치가 잘못돼서 우리 내부에서 사고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치를 하루빨리 시정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정권교체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내가 향토예비군을 폐지한다고 말했더니 전국 국민들이 호응했습니다.

우리는 향토예비군이 없어도 예비역이 있어서 유사시 10분내 동원할 법과 제도가 있는 것입니다.

향토예비군은 민주주의 아래서는 필요가 없습니다.

향토예비군은 이중 병역의무입니다.

헌법위반입니다.

중앙정보부에서는 향토예비군 중대장을 불러다 훈련시키는데 그것이 공산당을 잘 잡으라는 게 아니라 이번 대통령선거에

김대중 후보를 잘 때려잡으라는 얘기나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정권을 잡으면 국방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독재체제 강화에 악용되는 군사조직, 향토예비군을 전면 폐지한다는 것을 약속하는 바입니다.


공화당은 우리에 대해 생트집만 잡고 있습니다. 내가 볼 때 박정희 정권은 바뀌게 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선거 때는

야당이 비판을 하고 트집을 잡고, 여당이 정책대결을 하려고 하더니 이번에는 야당이 정책대결하고

여당이 트집만 잡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화당이 이미 국민에게 내세울 밑천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4대국 한반도 전쟁 억제 방안’은 아까 유진산 당수가 말했기 때문에 내가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나라에서 제2의 일·청전쟁, 일·러전쟁을 하지 말아라.

뒷구멍에서 조정해 이 나라에 다시는 6·25같은 것을 일으키게 하지 말아라’는 겁니다.

뭐가 잘못입니까.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남북교류 문제에 있어서도 김일성이 전쟁을 포기하고 파괴분자를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 동포끼리 소식도 알아보고 체육경기도

하고 기자도 왔다갔다 하자, 뭐가 나쁘냐 말입니다. 세계에서 동족끼리 자기 부모형제간에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편지도 못하는 나라는 박정권 치하 대한민국뿐입니다.


국제정세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한 ‘4대국의 한반도 전쟁억제’ 방안은 내가 지난번 미국에 갔을 때 험프리 전

미국 부통령도 내 설명을 듣고 “당신의 그런 훌륭한 정책을 미국 지도자들이 다 알았으면 좋겠다”고

널리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버드대학의 라이샤워 교수나 MIT대학의 윌리엄 교수 같은 사람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닉슨 대통령도 금년 연두교서에서 아시아에서의 안전보장은 4대국가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박정희씨에게 조그마한 국내정치를 악용하려고만 하지 말고 크게 아시아와 세계를 내다보고,

50년과 1백년 앞을 내다보고 국가의 운명을 생각하는 대통령학을 공부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요즘 지방을 다녀보면 도처에 ‘중단없는 전진’이라고 써 있습니다.

박정권이 전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진은 무슨 전진입니까.

이 나라에서 중단없이 전진하는 것은 오직 부패입니다.

이 나라의 부정부패는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박정희씨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청와대 비서실의 책임자, 경호실 책임자, 박정희씨 처남, 박정희씨 처조카 사위….


독일같은 데서 1백만∼2백만원짜리 비싼 개를 사다가 사람도 못 먹는 쇠고기를 먹이는 이런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단단히

세금을 물려야 합니다. 노인은 땅 한 평 없는데 30만평·40만평짜리 골프장이 대한민국에 10개 이상 있습니다.

단단히 입장세를 내야 합니다. 3백만원·5백만원짜리 보석반지를 끼고 다니는 사람들은 사치세를 내야 합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냅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나라나 사회의 형편도 생각지 않고 사치와 낭비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부유세와 특별세를 받는 일대 조세혁명을 단행할 것을 공약합니다.


군대와 국민은 하나


나의 공약에 대해 공화당이 실천가능성이 없다고 합니다. 이중곡가제와 도로포장, 초등학교 육성회비 폐지, 기타 지금까지

내가 한 공약에 모두 6백90억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예산 5천2백억의 1할5부만 절약해도 7백50억이 나옵니다.

오늘날 특정재벌과 결탁해 합법적으로 면세해준 세금만 1천2백억입니다. 정권을 잡아 받아들일 것을 받아들이면

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오히려 돈이 8백억이나 남는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박정권의 정신과 도덕을 무시한 정책을 시정해서 종교단체와 사회단체의, 또 문화인과 교육자들의 국민정신 재건과 국민도의

재건정책에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사회부패를 일소하고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하는

건전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나라의 정신을 회복시키고 물질만능을 배격할 것입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국내외에 걸친 민주 거국내각을 실시하고, 군에 대해서도 내가 완전무결하게 장악·통솔할 것입니다.

민주국가의 군대는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군대도 그런 군대입니다.

군대와 국민을 따로 갈라놓아 생각하는 것은 박정권의 독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내가 이번에 승리하면 군대는 3군 총사령관인 나의 명령에 복종할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내가 박정희씨와 공명선거에 대해 협의하려고 해도 그는 안 하려고 합니다.

서로 만나서 얘기하자고 해도 안 합니다. 국민 앞에서 TV나 라디오를 통해 토론하자고 해도 안 합니다.

독재적인 수법만 취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을 총동원해서 부정선거를 하고 있습니다.


4·19는 학생의 혁명이었습니다. 5·16은 군대가 저질렀습니다.

이제 오는 4월27일은 학생도 아니고 군대도 아닌 전 국민이 협력해서 이 나라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의 손에 의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한 위대한 민주주의 혁명을 우리가 이룩하자는 것을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7월1일은 청와대에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입니다.

서울시민 여러분, 7월1일 청와대에서 만납시다.

http://blog.daum.net/wwoo7125/8492317

 

출처 : 시사평론 - 정론직필을 찾아서
글쓴이 : 티무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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